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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어서와 2020년은 처음이지?

이 글은 2020년 1월 1일에 내가 작성을 하다가 중단한 글이다. “작성을 하다가 중단”을 했다고 말하기에는 사실 양이 너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제목만 정하고 내용을 작성하지 않았으니까. 그 동안 블로그 포스팅을 오랫동안 하지 않고 방치해 둔 나에게 “미안하다”고 전한다. 내가 블로그를 만든 이유는 나의 삶을 기록하며 과거의 나보다 더 나은 인간이 되었을 확인하기 위함이 가장 크다. 그런데 이것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직무 태만(negligence of duty)이다.

이 글은 2020년 1월 1일에 작성을 하다가 중단한 글이다. “작성을 하다가 중단”을 했다고 말하기에는 사실 양이 너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제목만 정하고 내용을 작성하지 않았으니까. 그 동안 블로그 포스팅을 오랫동안 하지 않고 방치해 둔 나에게 “미안하다”고 전한다. 내가 블로그를 만든 이유는 나의 삶을 기록하며 과거의 나보다 더 나은 인간이 되었을 확인하기 위함이 가장 크다. 그런데 이것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직무 태만(negligence of duty)이다.

아름다운 경쟁이란

한 주 열심히 살고 무한도전을 보는 게 낙(樂)이었던 시절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프로그램을 왜 보느냐며 “수준이 떨어지는 사람이 보는 프로그램” 이라고 비난을 했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집중해서 그 프로그램을 본 사람이라면 공감을 하겠지만, 그 프로그램에는 웃음도 있지만 도전이 있고 감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별히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경쟁시키는 프로그램은 굉장히 신선했다. 어떻게 보면 사회가 더 각박해진 이유가 다른 사람을 짓밟고 올라서서 1등이 되어야 더 많은 것을 얻는다는 쓰린 사실을 여러 채널을 통해 지속적으로 듣기 때문은 아닐까? 자신의 라이벌이 있어 서로 경쟁하며 성장하는 그러한 경쟁도 아름답고 필요하지만, 자신과의 경쟁은 그보다 더 아름답다. 내가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사람이 될 것인지, 2020년에는 어떻게 하면 2019년 보다 더 나은 내가 될 것인지를 고민하는 사람은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사람보다는 좀 더 풍성한(rich)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꼰대(boomer)들의 언행불일치

간혹 젊은 사람들에게 “요즘 젊은애들은 도전 정신이 없다” 라며 함부로 말하는 꼰대(boomer)를 보면 웃음이 나온다. 어떻게 남의 인생을 그렇게 함부로 말할 수 있을까? “내가 이미 무엇을 해봤기 때문에 다 안다”는 그러한 교만함이 세대 간 소통을 막아버리는 치트키라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 듣는 아래 사람은 “그건 그 때 시절 얘기고 이 답답아” 라는 생각이 들며 물 없이 고구마를 먹는 고통을 당한다. 소통의 시작은 말함에 있지 아니하고 듣고 반응함에 있다.

이어령 선생님이 예전에 어떤 책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360명이 360도로 뛰어가면 모두 1등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거나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나 또한 내 삶을 돌아보면 한 방향을 보고 뛰어들었던 사람이었다. 사회적 안전망(social safety net)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렇게 조급해지는 건 아닐까. – 그나마 최근에는 대기업에서 분사(spin-off)하여 창업하는 케이스가 많고, 실패를 하더라도 회사에 복직할 수 있도록 안전장치를 제공한다고 함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다. 공무원 및 공공기관은 수년 전부터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하여 채용 시 받을 수 있는 각종 불이익(나이, 성별, 지역, 학교 등)이 많이 해소된 것으로 보이나, 사기업은 여전하지 않을까? 최근에 봤던 인사담당자 인터뷰에서는 그러한 내용이 여실이 드러났다.

이러한 빡빡한 현실 속에 어떻게 감히 “요즘 젊은애들은 도전 정신이 없어”라고 폄하할 수 있는가? “요즘 늙은 것들은 도전 정신이 없어.”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어떠한가? 같은 말을 해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물론 “가는 말이 고우면 얕본다.”는 현실적인 조언도 있다.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이야>의 성인종 국장은 “요즘 애들은 조언 싫어해. 우리 세대를 존경하지 않거든.” 이라는 씁쓸한 말을 하기도 했다. (이런 사람들은 꼰대가 아니다) 세대 간의 갈등 때문에, 위에서 아래로 그리고 아래에서 위로 흘러야 하는 세상의 지혜정보의 교류가 꽉 막힌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나도 나이가 들면 그렇게 되버리는 건 아닐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 중 하나는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갖는 것이다. 똑똑한 사람이 항상 똑똑한 게 아니고, 무식한 사람이 항상 무식한 게 아니다. 과거의 나를 계속 뛰어넘는 삶을 살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도태한다. 야생이었으면 이미 잡아먹혔다. 인간인 걸 감사해라.

벌써 지쳤나요? 괜찮아요.

2020년이 시작한 지 이제 겨우 3개월 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미 나는 지쳤다. 내가 도대체 왜 공부하는 것일까? 목표가 분명하지 않은 사람이 열심히 살면 지친다. 지금 내가 그렇다. 올해 목표들 몇 가지만 살펴보자.

  1. PMP 취득
  2. 정보관리기술사 취득
  3. TOEFL 110점
  4. 운전면허 (쪽팔려…)
  5. 월 30만 원 부수입 확보하기
  6. URL shortener & QR 코드 생성기 만들기
  7. 그 외 매우 많음

2번은 현재 한국생산성본부를 다니며 학습중이다.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시험을 매주 보니 죽을 맛이다. 게다가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은 PMP 수강을 들으면 11시 40분 쯤 집에 도착하고, 이 놈의 코로나19(COVID-19) 때문에 비상계획 수립, 사업(2개) 입찰 진행, 재택근무 프로세스 수립 및 매뉴얼 작성, 내부감사 등 급한 일이 많이 몰려서 주중에 공부도 못했다. 그러다보니 수업에 소홀히 하게 되며 점점 멀어지고 있다. 지금 이 순간부터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나아가지만 마음의 짐이 되었던 건 분명하다. TOEFL은 어떠한가. 강의 결제하고 제대로 듣지도 못하고 있다. 강의 연장을 확인해보고 남은 기간이라도 열심히 해서 8월 까지는 공인점수를 만들겠다.

나는 왜 열심히 살까?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요즘 신천지가 하도 말이 많아서 난리인데 나는 그 쪽과는 관계가 없다. 어릴 때부터 계속해서 (중간에 방황기간이 길게 있었지만) 교회를 다니며 여러 가지 봉사도 했고,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까지는 사랑의교회가 강남에 있었을 때 찬양팀 등을 하며 내 가장 소중한 젊음을 불태웠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재능을 아낌없이 전부 다 활용하고 싶다.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발견 할 기회를 박탈당한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을 하고 싶다. 돈을 벌어야 해서 학교에 가지 못하고, 돌덩이를 부수는 애들이 있다고 들었다. 그 아이들을 학교로 보내고 싶다. 그들의 삶이 그저 어쩌다 태어난 그런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안에 있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삶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그래서 함부로 살면서 시간과 삶을 낭비하면 안 되며,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특별한 재능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발견하고 연마해야 함을 알려주고 싶다. 그들 각자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임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그래서 결국에는 그 작은 아이 하나 때문에, 친구들이 변하고, 가정이 변하고, 사회가 변하며 한 나라가 변하게 하고 싶다. 그러한 역할을 하고 싶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쥐뿔도 없는 내가 전문성(expertise)과 사명(destiny)을 갖고 나를 더 혹독하게 연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내가 교회에 잘 나가고 있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나를 갈고 닦고 있다. 2008년에 일본 하코다테(Hakodate)로 14박 15일 동안 선교를 갔는데, 마지막 밤에 함께 갔던 사람들과 회고를 했을 때, 함께 갔던 누나(미선)가 했던 “내가 피아노를 배운 걸 여기서 이렇게 사용하게 될 줄 몰랐다”는 말이 아직도 기억이 나기 때문이다.

나처럼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나는 지친 영혼에게 말하고 싶다. 비록 지금 당신 생각대로 당신의 인생이 풀리고 있지 않아서 힘들다면 그 힘듦을 인정하고 울어라. 여러운 일이기 때문에 힘든 것이다. 당신은 분명히 더 나아지고 있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일반적으로 기독교인은 이러한 것을 아래와 같이 여러 가지로 말한다. 모두 같은 뜻이라고 보면 된다.

  1. 하나님을 믿는다.
  2. 예수님을 믿는다.
  3. 교회 다닌다.

교회를 다니는 기독교인에게 전도는 사명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불교, 천주교 혹은 무교 등 다른 믿음을 갖고 있다고 하여도 당신을 전도할 마음이 전혀없다. 그냥 내가 사는 삶을 보고 끌리면 물어봐라. 내가 비록 가진 게 없지만 이 험한 세상에서 흔들리더라도 뿌리 째 뽑히지 않고 다시 굳세게 일어나서 도전할 수 있는 건 부모님을 통해 그리고 삶을 통해 배운 하나님을 향한 믿음 때문이다.

나를 응원하는 사람들을 패배자로 남겨두지 않겠다

성경은 사후세계가 있다고 말한다. 사람은 육체와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육체는 죽어도 영혼은 죽지 않는다. 천국에 있는 사람들을 믿음의 선조라고 부르는데, 그들이 지금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을 보며 기도하는 등 열심히 응원을 한다고 말한다. 나는 계속 넘어진 체, 좌절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을 패배자로 만들지 않을 거다. 지금 세상에서 나를 응원하는 가족(부모님과 누나들)을 때로는 실망시킬 수는 있어도, 결국에는 승자로 만들 것이다. 나는 다시 일어선다.

원래 그래. 원래 감독은 이상한거야. 배우들, 스태프들 현장에서 다 네 얼굴만 본다고. 네가 감독이니까. 네가 어떤 표정을 짓나 무슨 말을 하나. 네 얼굴, 네 입만 바라보거 있는데 네가 자고 있으면? 잘 수는 있어, 피곤하니까, 근데. 네가 패배자의 얼굴을 하고 있으면? 네 배우들, 네 스태프들 네가 싸그리 다 패배자 만드는 거야. 어? 그걸 몰라? 감독이란 놈이 말이야. 응?

– 멜로가 체질이야 15회, 손범수가 김환동에게

2020년 3월 15일 17:28 @ 성신여대역 근처 스타벅스 4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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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언양

라이언양 연구실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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