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막례 씨, 치매 올 가능성이 높네요.”
박막례 할머니의 손녀 딸 김유라씨는 할머니가 치매 진단을 받은 후 회사를 그만두고 할머니와 단 둘이 호주로 여행을 가게 된다. 회사를 퇴사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회사 대표가 휴가를 허락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텐데 과감히 퇴사를 할 수 있었던 건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이미 누리고 있는 것,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놓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이다. 나는 현재 재직중인 곳이 주는 안락함 때문에 새로운 도전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영어공부도 열심히 하고 필요한 기술도 열심히 배웠지만 명확한 목표를 갖고 도전하지 않다보니 어떤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할 수 있다고 내가 나 자신을 먼저 믿어야 하는데, 나에게 내가 믿음을 먼저 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믿음이 주는 아름다운 용기를 내 삶에서 볼 수 있도록 나는 나를 믿어야 한다.
책 초반에 치매에 대해 김유라씨가 발견한 내용이 마음에 와 닿았다.
치매는 의미의 병입니다. 내 존재가 더 이상 큰 의미가 없다고 판단할 때 뇌 세포도 서서히 감소하게 되고, 그렇게 기억력을 잃어가는 병이 치매입니다.
그러니까 치매는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없다는 판단이 들 때 우울과 시련이 뇌를 잠식하면서 뇌세포가 하나둘 손상되는 마음의 병이다. 손녀 딸의 간절한 바람, ‘할머니가 자신의 삶에 의미를 찾게 해주고 싶다’는 그 마음에서 모든 게 시작되었다.
책의 구성은 전반전과 후반전으로 나뉜다. 전반전은 박막례 할머니의 70세 이전까지의 인생 이야기를 다루고 후반전은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그 이후의 삶을 다룬다. 전반전에서는 할머니의 인생 순서대로 주요한 삶의 사건을 소개한다. 후반전 부터는 각각의 이야기를 할머니(막례쓰)와 김유라(유라)씨의 관점으로 소개한다.
* 참고: 김유라씨는 CJ ENM의 MCN(
Multi Channel Network) 브랜드 다이아TV(링크)에 소속된 Youtube Creator로 박막례 채널, Korea Grandma(링크) 를 운영하고 있다.
김유라씨는 호주 케언스로 할머니와 처음 여행을 하면서 늙었다고 세상에 무뎌졌을 거라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깨닫는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걸 봐도 할머니는 껍질 색깔이 어떻고, 꼭지가 어떻고까지 자세하게 알고 있었다. 나는 사소하게 여기고 눈여겨보지 않은 것들을 할머니는 다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수없이 먹어본 파스타지만 할머니는 먹을 때마다 맛이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고 하면서 세심하게 잡아냈다.
나이가 많으니 세상에 무뎌졌을 거라는 내 생각은 틀렸다. 손끝은 무뎌졌을지 몰라도 할머니의 모든 감각은 초롱초롱 빛났다. 모든 것에 반응하고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했다.
할머니보다 훨씬 적게 살았으면서 나는 뭐가 그리 익숙했을까. 뭘 다 안다는 듯이 살았을까. 할머니 덕에 나도 ‘처음’이 주는 설렘을 다시 느끼고 있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세상은 언제든 초면이 된다.
74~75쪽
박막례 할머니는 자신의 인생이 부침개처럼 확 뒤집혀졌다고 말한다.
우리 할머니는 매일 아침 새벽 4시에 일어나 식당을 해왔다. 이 정도면 최선을 다했다며 삶의 마무리를 준비해가는 일흔한 살. 당신은 당신의 일흔한 살을 상상해본 적 있나요? 아마… 상상하기 싫으시겠죠? 하지만 우리는 나이 드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침개처럼 확 뒤집어질 수 있거든요.
135쪽
할머니는 여행을 가면 건물보다 사람들하고 사진을 많이 찍는 게 좋다고 한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추억을 하는데, 나이가 들수록 사람이 귀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책의 후반부에서 가장 부러웠던 건 Youtube 사장인 Susan, Google CEO 순다르 피차이(Sundar Pichai)를 만나고 Google 최대 개발자 행사인 I/O 에 2년 연속 초대를 받은 거다. 나도 30대 때, 초대를 받아서 저 자리에 꼭 가보고 싶다.
아래 영상은 처음 Google I/O에 초대 받았을 때 기획한 수잔을 찾아서(Searching for Susan) 덕분에 촬영하게 된 영상이다.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매일 쏟아지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콘텐츠를 기획하고 촬영하고 편집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책에서도 이에 대한 김유라씨의 고민이 가볍게 나오는데 확실한 건 그냥 뛰어들만한 일은 아니라는 거다. 알고보니 김유라씨는 예전부터 영상편집을 하고, 영상 공모전에도 참석하는 등 기본이 탄탄한 사람이었다.
할머니가 유튜버 데뷔를 단번에 결심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나에게 직업을 줄 수 있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도 그랬다. 할머니 나이가 일흔한 살, 곧 은퇴를 준비해야 하는 나이인데 새로운 직업인 크리에이터, 유튜버란 이름으로 새 삶을 살 수 있다면 할머니에게 주고 싶었던, 박막례라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삶의 의미’를 선물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할머니 생각만 한 건 아니다. 나에게도 너무 재미있는 일이었다. 방송연예과에서 연기를 공부했던 나는 일찍이 연예인이 될 깜냥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빠르게 인정하고 친구들 옆에서 카메라를 들었다. 학교 다닐 때부터 독학으로 영상 공모전에 나가기도 하고 친구들이랑 단편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뭔가 재미있는 걸 만들어서 사람들과 공유하는 게 좋았다.
104~105쪽
박막례 할머니는 젊었을 때 500만 원 보증을 잘못서서 약 5천만 원이나 빚을 갚었다고 한다. 보증 때문에 우리 집도 풍비박산이 났던 경험이 있어서 얼마나 힘들었을지 공감할 수 있었다. 파출부, 음식점 등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꾿꾿이 살았던 박막례 할머니가 앞으로도 건강하고 즐겁게 사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인생 이제 끝났다’라고 생각하는 모든 죽어가는 영혼들이 다시 힘을 냈으면 좋겠다.
아래는 박막례 할머니 채널(Korea Granda)에 최초로 올라온 호주 케언즈(Cairns) 여행 영상이다. 부담없이 편하게 볼 수 있는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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